『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 3월 출판언론인 한창기가 창간한 월간 종합 잡지다. 한국 문화의 고유한 가치와 기저에 흐르는 민중의 삶을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되었으며, 당시 주류를 이루던 엘리트 중심의 담론에서 벗어나 토박이 문화와 실생활의 미학을 다루는 데 집중했다. 1980년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강제 폐간되기 전까지 한국 잡지계에서 독보적인 성격을 구축한 매체로 평가받는다.

이 잡지는 한국 잡지 역사와 편집 디자인사에서 시각 문화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중대한 분기점이다. 서구식 그리드(Grid)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도입하여 시각적 질서와 여백의 미를 구현했으며, 특히 국한문 혼용과 세로쓰기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전면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단행한 것은 혁명적인 시도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양의 근대적 형식을 빌려오되 이를 무조건적인 사대주의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서구 문화를 맹목적으로 배척하지도 않으면서, 그 세련된 틀 안에 한국의 ’민중 문화‘를 담아내어 토착성과 근대성 사이의 정교한 균형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 현대 디자인이 전통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 모델이 되었다.

사진 속 1979년 10월호(통권 43호)의 목차를 통해 당대 지식인 사회의 폭넓은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다. 권두 언어로 수학자 김용운의 ’기하학을 모르는 엘리트와 오늘의 대학 교육‘이 실렸으며, 예술 비평 섹션에서는 음악비평가 이강숙의 글과 미술 비평 등이 다루어졌다. 특히 ’잊혀진 백제‘와 ’민중의 유산/흉배‘ 등 한국의 역사와 민속을 시각 자료와 함께 비중 있게 다룬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여성 해방의 이론과 현실‘ 서평, 도서관 문제, 신문과 방송에 대한 미디어 비평 등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비판적 시각의 기사들이 수록되었다.

해당 호에 실린 내용들은 70년대 한국 지식인들이 마주했던 고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전통 문화와 역사를 복원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왜곡된 교육 시스템과 언론의 역할에 대한 자성적 목소리가 공존한다. 또한 여성 해방 이론이나 도서관 정책 같은 주제는 당시의 가치관이 서구적 근대성과 한국적 현실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잡지는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 산업화의 정점에서 정체성을 탐구하던 당시 독자층의 지적 허기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